강남 무역센터, 에어컨 7천대 끄고 '이것'으로 냉방한다

서울 강남의 랜드마크인 한국무역센터가 국내 최대 규모의 수열에너지 시스템을 도입하며 친환경 에너지 전환의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19일, 무역센터에서 '수열 확산 비전 선포식'을 열고 본격적인 가동을 알렸다. 이번에 도입된 시스템은 단일 건물 기준 국내 최대인 7천 냉동톤(RT) 규모로, 트레이드타워, 코엑스, 아셈타워 등 무역센터 단지 전체에 냉방 에너지를 공급하게 된다. 이는 일반 스탠드형 에어컨 7천 대를 동시에 가동하는 것과 맞먹는 용량이며, 약 1만 4763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막대한 전력량을 대체하는 효과를 가진다.수열에너지는 여름에는 대기보다 차갑고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물의 고유한 온도 특성을 활용하는 청정 재생에너지 기술이다. 건물의 냉난방 시스템에 이 물의 에너지를 활용함으로써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감축할 수 있다. 특히 기존의 냉방 방식과 달리 대규모 냉각탑이나 실외기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 도심의 미관을 해치지 않고 소음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또한, 이미 구축된 상수도관을 열에너지의 이동 통로로 활용하기 때문에 별도의 대규모 송전선로 공사 없이 도심 내부에 신속하게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으로 꼽힌다.국내에서 수열에너지의 가능성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4년, 롯데월드타워가 3천 냉동톤 규모의 수열에너지 시스템을 선도적으로 도입하여 상당한 에너지 절감 효과를 거두었으며, 거대한 냉각탑을 설치하지 않음으로써 건물의 구조적 안정성을 높이고 디자인 자유도를 확보하는 등 다방면의 이점을 증명한 바 있다. 정부는 이번 무역센터의 성공적인 도입을 발판 삼아, 향후 서울 삼성동의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와 영동대로 광역복합환승센터, 세종시의 국회의사당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대규모 건축물에 수열에너지 도입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정부의 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하천에서 정수장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물 관로를 '수열에너지 고속도로'로 구축하고, 하남 교산 신도시에는 '실외기 없는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영역으로 기술 적용을 넓혀갈 방침이다. 나아가 소양강, 대청, 충주 등 대형 다목적댐의 풍부한 수자원을 활용한 '수열에너지 클러스터'를 조성하여 2030년까지 총 1기가와트(GW) 규모의 수열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수열에너지는 탄소중립을 위해 도심에 즉시 적용 가능한 최적의 해결 방안"이라며, 무역센터 사례를 에너지 대전환의 출발점으로 삼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