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던 50대 여성, 결국 피살..“구속 기각이 만든 비극”
경찰이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50대 여성 피살 사건의 유력 용의자에 대한 추적을 이틀째 이어가고 있다. 대구 성서경찰서는 11일, 전날 새벽 3시 30분쯤 해당 아파트에서 A씨(50대 여성)가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과 관련해 40대 남성 B씨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현재 그가 차량을 이용해 대구·경북 지역을 벗어나 도주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관할 지역 경찰과 공조 체제를 가동하고 폐쇄회로TV(CCTV) 분석 등으로 B씨의 행방을 쫓고 있다.용의자 B씨는 이미 피해자 A씨를 대상으로 한 폭력 전력이 있는 인물로, 약 한 달 전에도 A씨와의 말다툼 끝에 흉기를 들고 위협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경찰은 B씨를 스토킹범죄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검찰 또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대구지법은 “피의자가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B씨는 석방돼 다시 사회로 나왔다.이후 경찰은 A씨를 신변보호 대상으로 지정하고 스마트워치를 지급했으며, 자택 주변에는 인공지능(AI) 기반 안면인식 CCTV를 설치했다. 이 시스템은 가해자 또는 미등록 인물이 주변을 배회하거나 경계구역을 침범할 경우 얼굴을 인식해 피해자에게 경보를 울리고, 동시에 112 긴급신고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장비다. 112 상황실 역시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이상 징후 발생 시 인근 순찰차를 급파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왔다.그러나 사건 당일 B씨는 복면을 착용한 채 아파트 6층까지 가스 배관을 타고 침입했으며, 이로 인해 얼굴 인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피해자인 A씨는 이미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스마트워치를 반납한 상태였고, 결국 아무런 경보나 구조 요청 없이 피습당했다. A씨는 흉기에 찔려 심정지 상태로 가족에 의해 발견됐으며,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한 시간 만에 사망 판정을 받았다. 수사 당국은 “구속영장이 기각된 점이 매우 아쉽다”며, 현재는 B씨 검거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참극은 최근 수도권에서도 유사하게 벌어졌다. 지난달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의 한 오피스텔에서, 전 연인을 스토킹하던 30대 남성이 피해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 역시 사전에 가해자로부터의 지속적인 위협을 호소했고, 경찰에 구속 수사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사후적으로 조치가 적절하지 못했다며 공식 사과했다.잇따른 스토킹 범죄가 구속 수사 없이 방치되다 피해자 살해로 이어지는 일이 반복되자, 지역 사회와 시민단체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대구여성의전화는 이날 논평을 통해 “피해자는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었지만, 법원은 특수 협박 혐의로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며 “이는 법원이 여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음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대다수의 스토킹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바라는 사법 조치는 가해자의 구속”이라며, “이제는 피해자가 숨어야 하는 현실이 아니라, 가해자의 일상에 제재를 가하는 방식으로 보호 시스템이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토킹 범죄로 조사를 받는 가해자를 구속 수사하는 일이 피해자의 생명과 맞바꿀 만큼 어려운 일인지 되묻고 싶다”고 강하게 질타했다.경찰은 현재 용의자 B씨의 도주로 인한 추가 피해 가능성을 막기 위해 전국적인 수배 체제를 가동하고 있으며, 그의 동선을 좁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사건이 단순한 개인 간 범죄를 넘어, 사법기관과 경찰의 신변보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근본적 대응 체계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