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무부가 희대의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과 관련된 수사 자료 3만 페이지를 추가로 공개하면서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방대한 분량의 파일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 언급된 문건이 여러 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대선을 앞둔 미국 정계가 또 한 번 엡스타인 스캔들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이번 자료 공개는 법에 따라 진행되는 절차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 관련된 민감한 자료의 처리 방식을 둘러싸고 법무부의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제기되고 있다.

 

공개된 자료 중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2020년 1월 8일, 뉴욕남부지방검찰청 소속의 한 검사가 작성한 이메일에서 발견됐다. 이 이메일은 트럼프가 과거 엡스타인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문건에 따르면 트럼프는 1993년부터 1996년 사이, 불과 3년의 기간 동안 엡스타인의 전용기에 무려 8차례나 탑승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한 비행에는 트럼프와 엡스타인, 그리고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20세 여성이 함께 탑승했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파장을 예고했다. 해당 이메일을 작성한 검사는 다른 두 건의 비행에 탔던 여성 승객들이 엡스타인의 오랜 연인이자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의 재판에서 증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에 보도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엡스타인의 전용기를 이용했다"는 코멘트를 덧붙여 의혹을 증폭시켰다.

 

이번 자료 공개 과정에서 법무부의 석연치 않은 행적은 논란에 기름을 붓고 있다. 트럼프의 구체적인 탑승 기록이 담긴 해당 문서는 지난 22일 오후 처음 온라인에 게시되었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시적으로 삭제된 뒤 다시 게시되는 소동을 겪었다. 재게시 과정에서 내용에 수정이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과정 자체가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는 과거 법무부가 엡스타인 관련 자료를 공개하면서 트럼프가 포함된 사진을 삭제했다가 논란이 거세지자 뒤늦게 복원했던 전례와 맞물리며, '법무부가 의도적으로 트럼프에게 불리한 정보를 감추거나 통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법무부의 이번 대규모 자료 공개는 최근 미 의회에서 통과된 '엡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에 따른 후속 조치다. 법안의 취지는 엡스타인 사건의 진실을 대중에게 투명하게 알려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고, 연루된 모든 권력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인 트럼프 관련 파일이 삭제와 복원을 반복하는 등 비상식적인 상황이 연출되면서, 법의 취지가 무색하게도 오히려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정치적 논란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명성을 위한 법이 오히려 투명성에 대한 더 큰 의구심을 낳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