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죽음의 권리' 주장하던 47세 박사, 스위스 법치 불신하며 스스로 생 마감

 조력사망 기기 '사르코'를 개발한 단체 '더 라스트 리조트'의 대표 플로리안 빌레트(47)가 지난 5월 5일 독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독일 언론들이 보도했다. 더 라스트 리조트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플로리안 빌레트 박사가 독일에서 사망했다"며 "플로리안은 자신의 목숨으로 공감의 궁극적 대가를 치렀다"고 밝혔다.

 

독일 출신의 신경심리학·행동경제학 박사인 빌레트는 2022년까지 조력사망단체 디그니타스의 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지난해부터 더 라스트 리조트의 대표직을 맡아왔다. 그는 지난해 9월 23일 스위스 샤프하우젠의 숲속에서 캡슐형 조력사망 기기 '사르코'(Sarco)를 처음으로 사용해 64세 미국인 여성의 사망을 도왔으나, 이 과정에서 자살방조·선동 혐의로 체포되었다.

 

'사르코'는 캡슐 안에 들어간 사람이 버튼을 누르면 질소가 주입되어 약 5분 안에 사망하도록 설계된 조력사망 기기다. 스위스는 조력사망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당국은 사르코가 안전이나 화학물질 관련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해 사용을 승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조력사망은 치료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약물을 투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의료인의 처방을 환자가 직접 실행한다는 점에서, 의료인이 직접 조치를 취해 생명을 단축시키는 안락사와는 구분된다.

 


빌레트는 체포 후 70일간 구금되었다가 풀려났다. 더 라스트 리조트는 사르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빌레트가 여성을 목 졸라 살해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강력히 반박했다. 또한 빌레트는 자신이 불법이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확신했으나, 스위스 법치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전해졌다.

 

빌레트의 죽음은 조력사망과 안락사에 관한 윤리적, 법적 논쟁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말기 환자들이 고통 없이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왔으며, 이를 위한 기술적 해결책으로 사르코를 개발했다. 그러나 이 기기의 사용과 관련된 법적 문제로 인해 자신이 체포되고 구금되는 상황을 겪었다.

 

빌레트의 사망 소식을 전한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검찰이 이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조력사망을 둘러싼 법적, 윤리적 논쟁이 얼마나 복잡하고 첨예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 라스트 리조트 측은 빌레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가 추구했던 가치와 목표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르코와 같은 조력사망 기기의 합법적 사용 여부는 각국의 법적, 윤리적 기준에 따라 계속해서 논쟁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